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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의 추억! 어떤 권리의 '박탈' 그게 그렇게 쉬운것이더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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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명의 추억! 어떤 권리의 '박탈' 그게 그렇게 쉬운것이더냐.

더더좋은날 2016. 12. 23. 01:06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소명요청' 내용인 즉 "귀하의 징계(조합원 제명)가 의결되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새벽에 전화가 왔었다. 잠에 빠져 받지 못했던 그 전화는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한 후배의 걱정어린 안부 전화였음을 출근 채비 중 남겨진 문자를 보고 처음 인지 했다. 멍했다. 설마? 워낙 소문이 많은 조직이라서, 설마?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출근 길 버스 안에서 차분히 생각해 보니 사실 일것이라는 쪽으로 확신이 들었다. 그로 부터 몇시간 후 내용증명으로 보냈다는 제명통지서가 허접하게 사내우편으로 날아왔다. 아니 내 던져졌다. "귀하의 조합원 제명이 의결되었습니다."  조합원 자격 박탈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가능하다면 광장으로 나가 박근혜 탄핵을 열심히 외치던 중인 내가 노동조합의 조합원 신분에서 속된 말로 탄핵 되었다.  

 

  민주노조 운동이 여전히 들불처럼 번지던 90년대 초 중반이었던것 같다. 비록 작은 노래패지만 나름 치열하게 활동 했다. 당시 JTBC 손석희 사장이 활동했던 MBC노조 노래패와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민중가요로 경연 했었으니 말이다. 잊지 못할 무대, 전국노동자 가요제 본선이었을 것이다. 그시기 노동조합 집행부에서 한국노총 노동절 행사에 참여 할 것을 요청했지만 우리는 거부했다. 세종문회회관에서 고관대작들과 함께 근로자의 날이라는 굴욕적인 이름으로 기념하는 가짜 노동절에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5.1일 민주노총에서 주관하는(전노협인지 기억지 가물가물 하지만) 진짜 노동절에 참석했다. 그 후 우습게도 정말로 한심하게도 5.1절 진짜 노동절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노래패에서 제명이 결정되었다. 제명을 확정하는 대의원대회에 앞서 밤새 유인물을 만들고 당일 대의원들에게 노래패 제명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제명되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 회의 시간으로 대의원들이 지칠때 쯤 노래패 제명 안건이 상정되었고 마이크 잡은 놈이 임자이 듯 몇 몇 대의원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땅!땅!땅! 제명이 가결 되었다. 어용 노총이 주관하는 근로자의 날을 거부하고 진짜 노동절을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노동조합 노래패에서 제명을 당해야 했었다.

 

  20여년이 흘렀다.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인식하는 순간 한숨이 더 깊어진다. 그 오랜 세월동안 무엇이 진보한 것인가? 왜 노동조합의 위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가? 왜 귀족노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말이다.  조합원의 복지와 위상은 줄어만가고 고용은 불안해져 가는데 노조 지도부의 위상만 높아져온 세월은 아니던가?  "몇년 고생한다. 봉사한다" 자평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바쁘다는 소문이 상시적이고,  현장으로 복귀 할 때는 승진 한자리씩은 챙겨서 복귀하는 것이 미덕이 되가고 있는것 같아 씁쓸하다.  결국 조합원 위에 군림하는 지도부에 의해서 또 제명의 위기에 처했다. 20여년전 제명의 추억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조합원에서 제명당하는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아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저들이 그 막강한 힘으로 또 얼마나 한 인격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게다. 그만 이 더러운판에서 제명되고 말자는 생각도 나를 유혹 하지만 앞으로 남은 생, 나 답게 살아보자고 약속 하지 않았던가? 무엇이 하고 싶거나 무엇이 되고자해서가 아니라, 밑바닥에서 굴러 먹어도 아닌것은 아닌것이고 순간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잔머리 굴리며 돌아갈 길을 고민하지 않겠다고 약속 했기 때문이다.  제명이 두려운 것이 아니기에 마이크를 잡은 그들로 부터 나에게 드리워질 온갖 구정물이 더러워서 피하기 싶기도 하지만 나는 과정과 결과에 관계 없이 정면으로 대응해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선례가 또 다른 사람들의 선례의 토대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작렬히 부서지더라도 돌아가지 않는다. 시대가 주권자인 민중이 권력을 부정하게 남용한 국가권력의 정점  대통령을 탄핵하는 마당에 하물며 노동자의 권익과 생존을 위한 자주적, 민주적 의사결정체인 노동조합 집행부에서 노동조합 존립의 주체인 조합원의 자격을 쉽게 박탈해서야 되겠나?

 

  하루하루 바보처럼 살아가기로 했지만 불의는 참지 않기로 했지 않던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했던가? 결코 큰 뜻은 아니어도 바른 뜻이라면 신의 가호가 있으리라!

  하느님 저를 그 음흉함이 숨쉬는 그곳에 기꺼이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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