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랑 예한이랑
사람이 문제다. 본문
어떤 사람이 더 친한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더 이익이 되는가?
어떤 사람이 더 가능성 있는가?
이것이 일반적인 선택의 조건이다.
어떤 사람이 더 진실한가?
어떤 사람의 소신과 철학이 더 확고하고 믿음직스러운가?
어떤 사람의 비전이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가?
이런것들은 말 할때만 내세우는 선택의 조건이다.
사람이 없다.
운동을 학습한 사람도 없을 뿐더러 습득 하지는 않았어도 겸손한 사람도 없다.
그져 장 자리에 가면 할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들 생각 한다.
조금 맛본 그 세상을 다 보고 경험한 것으로 착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사기만 하면 해결되는 자리로 쉽게 생각한다.
사실 그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내가 한번 해보지 뭐"
개인기 자랑질이나 지도력 연습하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아니, 애초부터 아니었어야 했다.
어렵게 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렵고
쉽게 하자고 하면 얼마든지 널널하게 할수 있는 조직, 그곳이 조합이다.
나 자신도 한 없이 모자란 사람이지만
내가 이 틈바구니 속에서 뭘하고 있나 싶어 답답한 밤이다.
이 시대 위기의 본질은 어딜가나 사람이었다.
선택받을 사람이나 선택할 사람들이나
내 자신부터 턱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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