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랑 예한이랑
2014년 5월 17일 광주의 마음으로 본문
5월 17일 광주항쟁 그날이다.
많이 피곤한 날이었다.
텃밭에 가서 일하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북한산 등반에 나섰고, 돌아와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텃밭에서 부터 고집을 피우던 우리 예한이, 결국 짜증이 극에 달해 등산 자체가 힘겨운 날이기도 했다.
아마도 아빠의 예민한 반응이 아이를 더 짜증나고 서럽게 했으리라.
어찌보면 자폐아인 예한이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고 일반적인 짜증인것을 그 상황을 이해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추긴것 같아 몹시 마음이 불편하다.
참을성 없는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것 같아 미안하다.
어찌되었건 계획했던 등산 코스를 3시간에 걸쳐 소화했다.
점심도 굶고 입을 쉬지 않고 쫑알 거리며 긴 산행을 수행했던 우리 아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이들과 약속한 돼지 갈비로 저녁식사는 일찍 해결했다.
저녁식사 이후로 아빠는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가족들과 함께 갔으면 좋으렸만 등산으로 피곤한 아이들을 동반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광장으로 가는 길, 돌아갈까도 생각도 했지만...
그러나 가기를 잘했다.
말도 안되는 참사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같은 날 촛불을 들지 않는다면......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다.
세월을 흘려 보내 나이가 들어차다 보면 멀리 관망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무뎌지고 우경화되기에 이른다.
오랜만에 촛불을, 가두 행진과 구호를 외치면서
여전히 세상의 희망을 이야기 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거창하거나, 조직된 여유로움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쓸쓸히 홀연히 참여 하더라도 적어도 양심과 책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더 이상 이 사회가 이렇게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실히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을 일깨워 주기에 너무도 큰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이었다.
가두행진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나온 엄마, 혼자 나온 중년의 신사, 홀로 촛불을 든 젊은 여성, 젊은 연인들... 글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오만과 겉멋을 빼고 사람속에서 숨쉬는 변화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임을 깨닫는다.
잘 다녀왔다.
추하게 늙기 전에 경종을 울려주었기에 고맙지만
그 희생이 너무 크고 참혹하지 않은가?
그래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버리지 못하고 집으로 가지고 온 이 카드와 바람개비
우와한 인생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버리지 말아야 할 자신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온 것이라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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