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랑 예한이랑
부끄러웠던 시간 본문
솔직히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당초의 의도가 그렇지는 않았을것으로 믿는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의연한 선배님들의 모습을 바랬던 것은 애초부터 아니었다.
어느정도는 그러려니 예상 했었다.
그리고 이땅에서 자식키우며 살아가야할 가장의 역할도 있고
노동조합을 떠나 현직에 복귀한지오래고
현직에 있는 동안 조직으로 부터 인정받고자 함은 이해간다.
그래서 상황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그러나 도는 차고 넘쳤다.
한때, 어려울때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자부심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노동조합에 애정이 있어서 그 많은 분들이 모였다고는 상상할수 없었다.
정파라고 말하기에는 정말 쪽팔리지만 어찌되었건 생각이 서로 다른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자리에 모인 의미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룬다 하더라도
노동조합이라는 자랑스러워야 할 이름으로 피어나지 못한것이 이날 모임의 한계다.
노동조합이라는 계급장을 가슴에 단 분들께서
호방한 기개를 펼쳐 주었다면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모임의 역사성이 엄연히 존재하건만
그 차고 넘침이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의 색깔에 덧칠이되고
가벼운 천으로 가리워지는 느낌, 그 느낌을 지울수 없다.
참석한 각개인의 입장을 위해 모임은 그져 멍석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문해본다.
어차피 짐은 또 현 집행부에게 주어진다.
노사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는것이야 어차피 우리가 해야할 일이지만
정리 하고 끌고가야할 주체이기에 영 개운치 않다.
현실로 돌아와 나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너는 자부심을 가질만큼 잘 하고 있는가?
열심히 말고 잘 말이다.
어느 날 세월이 흘러 뒷방 신세의 초라한 자리에 남아있을 지언정
눈빛과 뛰는 심장만큼은 뜨거워서
당당하고 기개있는 선배의 모습으로 후배들 앞에 설수 있는
그런 인생을 부지런히 가꾸어야 하지 않겠나.
말로 말고 눈빛과 미소로만으로도 가슴을 열고 나눌수 있는 사람.
아마도 지금의 나의 상태를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수양과 정진이 필요하겠다.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중요한건 자리가 만드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