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랑 예한이랑
볍씨학교에 불어닥친 재개발 쓰나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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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을 지원하는 조례 제정이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도에서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경기도 대안교육기관 등의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다. 도의회를 통과하면, 미인가 대안학교가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홈스쿨링을 하는 학부모도 지원 신청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여 교육복지 환경에 일대 혁신이 예상된다. 한푼두푼 모아 만든 학교가 쫓겨날 판 진보 진영 후보로 최근 당선된 최철환 경기도 교육의원은 “정규 인가 학교와 똑같을 순 없지만, 대안학교 아이들만 정부가 제공하는 기본적 교육 혜택에서 배제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며 “조례 초안은 이미 완성됐고,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도록 추진할 방침”이라고 7월8일 밝혔다. 조례 초안을 보면, 경기도지사·교육감은 △대안교육기관 등의 학습자가 공공시설을 이용하려는 때에 초등교육법에 따른 학생과 동등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안교육기관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교육감 소속의 대안교육위원회를 설치한다 △3년마다 대안교육기관 및 홈스쿨링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다 등이 뼈대를 이룬다. 해당 조례 추진에 가장 주도적이면서도 절박하게 힘을 실은 이들이 도내 광명시 볍씨학교 교사·학부모·학생이다. 2001년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초등 대안학교인데, 학교 터가 지난 4월 정부가 추진하는 보금자리 주택지구(3차)에 편입돼 쫓겨나갈 판이다. 재개발 등이 진행될 때 인가 학교는 물론, 노인대학(평생교육시설) 등도 ‘존치’가 가능하다. 교육시설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볍씨학교는 안 된다. 해마다 수십~수백 명의 아이들(7월 현재 유치부 100명, 초·중등 과정 96명)이 지난 10년 동안 지식을 쌓고 꿈을 키우며 사회인으로 성장해온 터전이지만 ‘교육시설’로 불리지 못한다. 학교 관계자들은 “국가가 정한 공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과 학습권이 차별받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내년 말께는 학교를 옮겨야 한다. 개발 보상 이익으로 ‘부자 학교’ 되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 물을지 모르겠다. “학교를 지을 때 학부모·시민단체 등이 한푼두푼 모았어요. 적금도 깨가면서요. 그렇게 평당 65만원에 부지를 사기 시작했죠.” 개교 때부터 울력했던 학부모 이영이(광명YMCA)씨의 말이다. 이 지역 시민단체 주도의 촌지거부 운동에서 비롯된 ‘기적’이었다. “그해 조금 사고 또 다음해 사고 해서 지금의 부지(1050평)가 마련된 겁니다.” 학부모들끼린 “기둥과 지붕을 빼곤 우리가 (학교를) 다 만들었다”고 회자한다. 이씨가 말을 이었다. “보상가가 평당 200만원 정도 된다고 해요. 하지만 다시 들어오려면 700만원이랍니다.” 볍씨학교는 유치원 과정에 입학해 고교과정까지 마치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학교는 문을 닫거나, 값싼 땅을 찾아가야 한다. 덜 가진 자가 더 먼 외곽으로 내쫓겨간 반세기 개발 원칙이 무람없이 적용되는 형국이다.
시·건설사, 대체 부지 요구에 난색 같은 지구에 편입된 산어린이학교(초등 대안학교), 경기 부천의 2차 보금자리 주택지구에 편입된 큰나무학교(국내 최초의 발달장애 대안학교)도 함께 ‘벼랑 끝’에 섰다. 세 학교 아이들만 모두 280명가량 된다. 학교가 사라지면 다들 입학·검정고시 등을 통해 일반 학교로 옮기거나, 장담 못할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한다. 서민용 보금자리가 ‘서민 대안학교의 쓰나미’를 부른 셈이다. 특히 큰나무학교는 재개발로 한 차례 이전한 바 있다. 지금의 부지를 어렵게 매입해 학교 건물을 준공하던 중 보금자리 주택지구 지정 소식(지난해 10월)을 또 들었다. 학부모들은 ‘아연실색’이란 표현을 썼다. 세 학교는 한목소리로 학교 존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 일반의 무관심은 컸다. 좀더 근본적인 지점을 바라본 배경일 것이다. 강옥희 볍씨학교 교사는 “조례가 제정되더라도 세 학교의 존치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며 “다만 이를 교육 소수자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계기로 삼고, 지역별로 조례제정 운동도 확대해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최 교육의원에게 제안한 조례안에 홈스쿨링이 포함된 점부터 이를 잘 말해준다. 현재 전국적으로 대안학교 학생은 7천 명, 홈스쿨링 학생은 5천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교육 소수자 전체 대상이 아주 크진 않다는 점, 홈스쿨링 학생이 대안학교와 견줘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 함께 읽힌다. 조례안은 지원 대상을 자발적 신청자에 한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의 어떠한 간섭도 경계하는 대안학교가 적지 않다. 대신 신청자는 자산 총액, 교육계획서, 교사 배치도 등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지원 내역을 관리·감독하는 규정이 마련될 예정이다. 대안교육연대 이치열 사무국장은 “지원 내역이 투명하게 사용되는지 감독은 필연적이지만, 교사 자격·평가 등 대안학교의 근본 정신을 훼손하는 방식과 수준의 감독은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앞서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안교육기관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조례안이 상당 부분 신세 진, 이를테면 ‘모법’이다. 그러나 법안 통과는 멀어 보인다. 당시 법률안 설계 과정에 참여한 이치열 사무국장은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법안에 상당히 부정적이고, 무엇보다 현안에 밀려 (법안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안학교의 ‘사회적 위치’가 딱 그렇다. 현재 시와 건설사 쪽은 볍씨학교 등 세 대안학교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존치는 물론, 대체 부지 확보도 낙관하기 어렵다. 이치열 사무국장은 “대안학교를 교육시설로 인정하는 건 조례가 아닌 더 큰 법(초중등 교육법 등)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8년 동안 이 학교에서 배우고 제 길을 한 발자국씩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렇게 소중한 곳을 없애고 아파트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볍씨를 졸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은 지금 즐겁게 배우는 공간에서 지내다가 졸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볍씨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속 울릴 수 있게 많은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조아무개양) “보금자리 주택 정책에 관해 알고 계신가요?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공약으로 내놓은 정책입니다.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어 사람들이 싸게 집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광명의 70%인 나무, 풀, 꽃, 산, 맑은 자연들을 밀고 그 자리에 흙먼지를 날리며 아파트를 지어야 합니다. 이런 자연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볍씨학교도 사라지려 합니다.”(청소년 과정 단체 명의) “우리 학교가 보금자리 주택지로 지정되면서 오히려 보금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모, 삼촌들(학부모)은 보금자리 주택에서 우리만 빼달라고 서명운동도 하고 회의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같이 서명운동을 했습니다. 홍보지까지 나눠주고 그랬는데….”(중학교 과정 김아무개군) 구명 사이트 열고 법·조례제정 운동 나서 볍씨학교 구명 사이트(byeopssi.org/sos)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영이씨는 “어린아이들이 이젠 1인시위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부모나 교사보다 더 애를 태운다는 얘기다. 이치열 사무국장은 “이런 요구들은 이미 북유럽 등 교육 선진국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국회 쪽 법안 통과와 지역 단위 조례제정 운동을 함께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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