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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글쓰기

기다림

더더좋은날 2010. 2. 23. 03:37

기다림 속의 결과로 희열을 얻을 때 그때야 기다림의 묘미를 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루하다.

의심의 의심이다.

때로는 배반의 심정으로 포기로 귀결된다.

 

노동조합 잘 해보고 싶은데 만만치 않다.

섯부른 투쟁은 약효를 보기 어렵다.

철저히 준비하고 명분이 없으면

무엇보다 민심을 이끌고 대중이 조직되지 못하면 

투쟁은 쉽사리 깨지기 일수다.

노동조합의 영속성을 위해서 장기적인 생존권을 지키기위해서는 

투쟁은 막다른 골목에서 조직보존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조합원들은 항상 조바심을 느낀다.

냄비에 물이 빨리 끌어 오르기를 재촉한다.

그러나 이유는 있다. 그리고 정당하다.

고통에서 벗어나고푼 욕망,

그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품성이 아니던가?

그 욕망이 노동조합이 슈퍼맨이 되기를 바란다.

 

그 기다림과 절절한 욕망앞에 화답할 때가 된것같다.

결코 쓰러지지 말아야 한다는

조직을 보존해야 한다는 대 진리를 가운데 세우고

한발 내 딛을 때가 되었다.

두마리의 토끼를 잡기위한 우리들의 실험은 시작될 것이다.

이제 깃발을 올리고 거치 파도를 향해 배들 띄운다.

 

언제부터인가? 이른 아침에

아무도 깨어잊지 시간,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아빠 곁으로 작은 천사가 눈을 부비며 거실로 들어선다.

아들 예한이가 쇼파에 웅크리고 누워서 아빠의 출근길을 지켜준다.

"아빠는 예한이를 사랑해요" 라는 표현에

작은 손을 머리위로 하트를 만들며, "예한이도 아빠 사랑해요"라고 화답한다.

저녁 무렵이면 "아빠 오늘 늦게와?" 라며 예슬이는 전화로 묻는다.

항상 같은 질문에 아빠는 항상 같은 대답을 궁색하게 늘어 놓는다.

"아빠 오늘 늦어" "예슬이 저녁 먹었어?"

내가 어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듯이

엄마, 아빠인 나의 동료들도 아이들이 그리울 게다.

피곤에 지쳐 놀아주지 못할 지언정 사랑스런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하고 행복을 만들고 싶을게다.

젊은 친구들은 젊은 친구대로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선배들이라고 미래를 설계하고 싶지 않겠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왜 이렇게 사방의 벽을 둘러치고 또 다른 이방인을 만들어야 하는가?

문명의 시대인가? 야만의 시대인가?

 

그래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음이

기다림인가 보다.

 

내가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와 그들이 싸워주기를 원하는 이유는

결국은 같다!

그럼 싸워야 하는구나!

오늘 보내는 새벽은 피곤보다는 전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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