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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내겐 아직 슬퍼할 힘이 남았어 / 김현진 본문
[야!한국사회] 내겐 아직 슬퍼할 힘이 남았어 / 김현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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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이다. 무감각이다.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 … 이 이름들 뒤에 화물연대 박종태 지회장이 더해지지만 고분고분히 뭐든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은 무감각해져 간다. 아이쿠 또 누가 죽었구나 여기 열사 하나 추가요, 하는 식의 이 끔찍한 무관심. 박종태 지회장은 유서에 썼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거라고. 끝까지 어떻게 승리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억울하다고. 그것만이 그가 놓친 억울한 광경일 리 없다. 그야말로 눈동자처럼 사랑했을 아들딸들이 어떻게 자라 가는지 그것도 그는 다시 볼 수 없다. 고인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피맺힌 슬픔이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견디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아빠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는 날이 될 때까지, 고인이 남기고 간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겠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견뎌야만 하는가. 언제까지 참아야만 하는가. 피맺히도록, 죽도록 참고 또 참아야 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 서러운 죽음 앞에 죽을 힘을 다해 살아 보라는 충고는 아무런 힘이 없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보아도 찾아온 건 용산에도, 대전의 야산에도 결국 죽음이었다. 가슴에 피가 맺히도록 슬픔이 가득 차고, 이 서러운 슬픔이 가슴을 후벼파도록 왜 이렇게 견뎌야만 하는가, 눈을 떠도 도무지 깜깜하다. 이 광경들이 깜깜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는 중얼거린다. 모든 게 끝장나도, 내겐 아직 죽을힘이 남았어. 길고 격렬한 싸움에 지친 박종태 지회장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그 힘은, 아마도 죽을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을힘을 다해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는 쉽게 말하겠지만 그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힘은 그야말로 죽을힘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슬퍼할 힘뿐이다. 슬퍼하지도 못하면 이놈의 세상에 완전히 먹힌다. 정말로 끝이다. 박종태 지회장 유가족 후원 계좌는 기존 운수노조 계좌로 통합되었다. 그 죽음에 슬퍼하고, 내 구차한 삶 유지하느라 푼돈 입금할 힘밖에 없어도 그래도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정말로 깜깜할 것 같으니 뭐라도 하자, 제발 슬퍼하자, 제발 제발. 김현진/에세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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