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부활절의 단상
4.16 이다. 참사 3주기다. 그리고 부활절이다.
어제는 부활절성야미사를 세월호 진실이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드리기로 진작부터 마음 먹었다. 사촌동생 아기 돌집을 다녀오는 길에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이미 광화문 북측 광장엔 노란 종이로 감싼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들어차 우리는 끝자락 후미진 곳에 겨유 자리 잡았다. 행사가 주는 의미와 무게 때문인지 광장의 느낌은 여느때와 다르게 차분했으며 봄기운처럼 온화했다. 특히 작년 2주기에 비하면 정말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 주셨다. 지난해 4.16은 외로운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서운하고 아쉬움이 있었다. 그에 비해 올해 3주기 전야제라고 할수 있는 토요일 광화문 광장은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는 연대이 손길로 꽉 들어찬 느낌이다. 외로움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쩔 수가 없는가보다. 이 자연스럼 감정 말이다. 세월호 집회에 자리 할 때면 매번 그렇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같아서 일까? 잊지 말자는 말 한마디, 시 한구절, 노래 한자락에 눈시울이 뜨거워 지고 끝내 흐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어쩌랴 흘러 마를 때 까지 그대로 내버려 둔다. 지천명을 안다는 나이게 접어들어 흘리는 눈물이 주책스러울수도 있겠지만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아직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내 자신에 조금은 감사할 일 아니던가.
9시 예정이었던 부활절성야미사는 세월호 행사가 늦어져 9시 40분쯤 되어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우리 아들,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해서 겨우 구슬러 미사 집전 장소로 이동했지만 요즘 컨디션도 좋지 않은데다 과식으로인한 소화불량으로 힘들어 하던 차라서 그런지 인내심에 인계점에 도달했다. 아쉽지만 미사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도 알아주실게다. 부활절 의미에 걸맞는 부활절성야 미사를 찾아 온 우리 가족의 마음을 말이다. 예수께서 늘 거리에서 힘없고 피박 받는 민중들과 함께 하셨던것 처럼 이 시대 부활은 고통이 있고 애환이 있는 거리에서 부활되어야 하지 않겠나?
부활절 당일, 명동 성당 앞에 경찰들이 지키고 있었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아마도 대구 희망원 사태로 인한 시위였을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예상이 맞다면 교회는 부끄러운 부활절을 보낸것이라 하겠다. 교회가 저지른 잘못이다. 수백명이 죽었고 수천명의 인권이 침해되었다. 적어도 교회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말씀을 전도 할수 있는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회계하면 되는 것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톨릭센터 건물에 세월호의 아픔고 함께하는 부활절이라고 걸어러놓은 프렝카드를 바라보면서 한국 교회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교회 구석 자리 어디에도 앉아계실 공간 조차 없는 듯 하다. 아마도 그분께서는 오늘도 어느 거리에서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고 가엽게 여기셨던 사람들 곁에 아무 말 없이 서 계시리라. 당신께서 없는 교회에서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수 많은 신자들은 누구를 만나고 누구의 말씀을 들으며 또 기억하는가?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기도 하는가? 그분을 거리로 내몰고 텅 빈 교회에서 말이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시대는 그것을 몰라서 묻느냐고 다시 묻는다. 2017년 4월 16일 부활절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