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

3월11일 박근혜 없는 봄을 맞이하며, 우리는 촛불가족이다.

더더좋은날 2017. 3. 19. 21:13

  3월 10일 오전 11시,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역사의 순간이 시작되었다. 분주한 일터에서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서비스 직종이기에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을 맘 놓고 볼 수는 없었다. 다행이 모두들 집에서 생방송을 보는지 객장에 찾아오시는 손님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볼륨을 올릴수는 없으니 수시로 테블릿PC의 생방송 자막을 흘낏흘낏 바라보면 일을 해야 했다. 이정미 재판관의 결정문을 읽어내리기 시작하면서 심장이 두군거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이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13명 맘짓 우리 직원들은 "분위기가 이상하다", "말도 안되"라고 수군 거리며 불안함이 역력해 졌다. 그러나 마침내 파면! 나는 순간 테블릿 PC자막에을 놓쳐 인지하지 못했으나 누군가의 악~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파면이 탄핵이지?"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비로서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파면이 탄핵을 의미하는지 기장되 마음에 순간 의심하기도 했다. 울컥했다. "파면"이라는 두글자에 울컥했다. 퇴근 후 광화문에 가려던 마음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 만큼은 그동안 토요일을 반납한 우리 가족들과 함께 축하를 나눠야 옳게다는 생각에서다. 어차피 20차 촛불에 광장을 갈테니 말이다. 3월 10일 조촐하게 맥주와 음료를 나누며 가을 부터 겨울동안 광화문을 지켰던 우리 가족 스스로를 위로하며 훈훈한 밤을 보앴다.

 

 

 

  20차 촛불광장인 광화문으로 향했다. 집회하기 한없이 좋은날, 그리고 바라고 바라던 박근혜 없는 봄을 맞이하는 날이다. 질서 없이 나부끼는 태극기 무리들의 행진으로 본점에 주차도 못하고 청계천에 발이 묶이는 통에 부득이 청계천 아모레퍼시픽 본사가 있는 시그니쳐타워에 주차했다. 다행이 빌딩내 상가를 이용할 경우 종일 주차료가 무료다. 광화문으로 이동해 자리를 폈다. 이제 광화문 가는 길이 마치 출근길을 걷듯 너무나도 친근하고  돗자리를 펴는 것도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드디어 박근혜 없는 봄을 맛이하는 촛불을 밝힌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2016년 10월 27일 송경동 시인이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라며 동화면세점 앞에서 첫 집회를 제안한것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5일간 휴가중 마지막 날이지만 정말 뭐라도 해야겠기에 홀로 광화문에 나갔다. 조촐했지만 첫번

째 촛불이었고  행진 이었다.

 

  10월 29일 마침내 밝혀진 박근혜퇴진 1차 촛불부터 우리가족은 함께했다. 그렇게 시작할 때는 한해를 보낼지, 겨울을 보내게 될지 몰랐지 않은가?  10월에 시작해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때 까지 총 20회 광화문 집회, 우리가족은 4번을 제외하고 촛불과 함께 했다. 그곳에 가야했고 밝혀야 했으며, 외쳐야 했다.  특별한 사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토요일을 반납한 우리가족들 겨우 찾아온 승리의 시작, 기쁨을 스무번째 촛불을 들며 기꺼이 즐겼다.  집회가 끝나고 행진중 빠져 나와서 아이들 저녁을 먹였다. 우리 쌍둥이가 좋아하는 치킨, 아내와 나는 생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시장기를 잠재우고 다시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가 콘서트를 함께 했다. 사실 자폐인 우리 예한이때문이라도 늦은 시간까지 집회를 함께 할 수 없었다. 한두시간 동안 얌전하게 참아주는 아이가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오늘은 밤 10시 30분까지 광장을 끝까지 지켰다. 20회 촛불 집회중 가장 오랜 시간 자리했다. 투덜대면서도 가족과 함께하는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 우리 딸 콘서트가 끝날때까지 흥겹게 함께하는 것을 보고 잘 커줘서 고맙고 느껴줘서 고맙고 함께 할줄 알아서 대견했다. 아마도 우리 예슬이에게 의미있는 경험, 성인이 되서도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닐까 한다. 이만한 교육이 또 어디있겠는가?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촛불을 밝히고 일주일이 지난 다음이다. 먹고사는데 바쁜 나날을 보내며 글을 써 남기두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몇장 남겨두기 보다, 뜨거운 함성이 있었던 광장에 우리 가족이 있었음을 우리 예한이도, 우리 딸 예슬이도 촛불을 들었고 피켓을 들었으며 끝내 부정한 대통령을 권력에서 평화적으로 끌어낸 그 역사의 현장에 한사람으로, 한가족으로 자리했음을 투박하게 남아 남겨 두고 싶었다.

 

  곧 4월 이다. 4.16이 또 다가온다. 탄핵을 이루어 냈지만 진실은 끌어 올리지 못했다. 그 깊은 고통을 억누르면 밀려오는 좌절을 인내하며 오로지 진실 인양을 위해 광화문을 지켜주신 세월호 유가족의 용기와 인내가 없었다면 과연 박근혜 없는 3월 봄을 맞이 할수 있었을까? 이제 겨우 깜도 아니었던 박근혜를 끌어 내렸을 뿐이다. 이제 여름이 오기 전에 완전한 진실을 인양해야 한다. 가족, 가족은... 한쪽이 떨어져 나간 세월호 가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그래 가족, 가족이다. 우리는 촛불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