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

가사일기 세번째

더더좋은날 2014. 8. 29. 23:41

하루동안 병원과 집을 세번오가는 중에 하루 다지나가 버렸다. 북악스카이웨이만 3번을 넘나 들었다.  

 

수술 스케줄이 오후로 잡혔다고 했다.

아이들 아침 챙겨 먹이고 예슬이는 먼져 출발하고 예한이 아빠와 함께 학교로 출발했다.

아빠 손을 꼭 잡고 도착한 교실, 친구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씩씩하게 인사를 건내는 여자 아이가 예한이 신발 주머니

정리도 도와주고 친절하게 개인 사물함 위치도 알려 준다. 아빠와 같이 등교한 것이 신기했는지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거리며 처다보기도 했지만 반친구들은 예한이를 동생처럼 반겨준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선생님께 사정 말씀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며 청소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 와중에 어제부터 갑작스럽게 찾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고, 없던 일도 생기는지....

 

병원에 도착하니  수술 스케줄이 더 뒤로 밀리고 있었다. 기왕이면 빨리 받는게 좋을 텐데....

끝내 아내 수술실 들어가는 것도 보지 못하고 어머니께 부탁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예한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서둘러 학교로 달려가 예한이 데리고 집으로 돌아 왔다.

예한이 손잡고 돌아오는 길에 "수업시간에 노래부르고 떠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 떠들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럼 선생님께 물어 본다고 했더니 대번 "아니오!" 라는 대답이 번개처럼 튀어 나온다.

녀석 미안한 구석이 있는게다.

수업시간에 수업 방훼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다. 

 

예한이 음악치료 센터 보내고 나서야 수술실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왔다.

불안과 초조, 회한, 다짐들 실로 다양한 심경들 속에 마음을 다잡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노심 초사 끝에 "수술은 잘 끝났"노라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을 접해 다행이었지만

30분이면 족하다던 회복 시간이 1시간이 넘고 또 30여분이 흘러 가다보니 불안과 초조함 감출 수 없었다.

예슬이 학원 끝나는 즉시 예한이 돌보라 하고 북악스카이웨이 길을 거침없이 질주 했다.

병원에 당도 할 즈음 회복실에서 무사히 나왔노라는 연락이 왔다.

휴~ 안도의 함숨이 나온다.

몇년 전 의료사고 악몽이 있기에 당최 조금도 안심이되지 않았다.

그때도 복강경 수술이었고 이번 수술보다 훨씬 흔하고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운명의 장남인지 의료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때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하랴.....그래서 인지 수술이란 수술은 다 두려워 졌다.

 

일단 아이들 할머니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 쌍둥이를 부탁하고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적어도 오늘 밤 만큼은 내가 곁을 지켜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도 예한이가 많이 컸다. 엄마,아빠 없이도 잘 지낼 줄 알았다. 엄마 바보였던 예한이가....

6학년씩이나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발달장애1급  자폐인 예한이로 본다면 장족의 발전 이다.

우리 예슬이 자기 손으로 머리빗질도 양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동생을 도와  살뜰이 양치질 까지 마무리 하고 재웠단다.

참으로 기특한 딸이다.

 

이렇게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고 새 날이 밝아왔다.

아내 곁에서 병원 잠을 자고 나서 이른 아침 다시 아이들 등교를 위해 집으로 건너왔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예한이 이 닦이고 씻기고 입히고 아들 손 잡고 학교로 향했다.

예한이를 어린 동생처럼 반갑게 맞이해주는 학급 친구들이 무척 고맙다. 예한이에게 떠들지 말라고 당부하고 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으로 덥고 멀었다. 전날 아이들 등교 시켰을때 보다 오늘은 왜이리 더 힘든것인지,

이 길을 아내는 매일 두번씩 다녔던 것이다.

목줄기로 땀이 흐르고 몇번을 쉬지 않고는 아리랑 고개를 넘기는 어려웠다.

 

급히 병원에 다녀와서 다시 예한이 하교를  위해 학교를 향했다..

아이손을 잡고 또 다시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 아내가 그랬던것 처럼......

집에 돌아와 아이들 간식을 해 먹였다.

만두를 기름에 튀겨주는데 왜이리 타기만 하고 연기만 자욱 한지.

한국형 일반 후라이펜이면 자신 있는데 이 암웨이 후라이펜은 영 자신 없다. 꼭 망친다.

예슬이 학원 태워주고 에한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예한이 수영레포츠가 선생님 사정으로취소디는 바람에 녀석과 함께 가야 했다.

그래도 병원에 있는 서너시간 동안 예한이 혼자서 잘 놀았다.

이제 너무 잘 놀아서 아빠 말은 듣지도 않고 무서운 줄도 모르고 가고 싶은 곳이면 스스로 간다.

제일 걱정은 무턱대고 달리다 보니 차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고

자기 방어능력이 없는 예한이가  나쁜 생각을 가진 놈들에게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이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예한이가 아빠와 함께 잘 넘어간다 싶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참다가 그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성질머리... 하지만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강하게 밀고 나갔다.

30분이나 흘렀을까? 그제 서야 항복 한다. 녀석 사춘기가 분명하다.

어렵게 어르고 달래서 예한이 씻기고 오늘 저녁메뉴로 약속한 김치볶음밥을 요리했다.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창조한 아빠표 김치볶음밥 예슬이, 예한이 모두 흡족해하여 다행이다.

설거지, 화장실 변기 청소, 예슬이 새로산 청바지 손빨래, 세탁기 돌리고 빨래 널고 아이들 재우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예전에도 조금은 해 보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고 

환경 변환에 따른 아이들 엄마의 힘겨움에 대해서 배려하거나 이해 하려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 역활을 해 보니 확실히 느낄수 있다.

엄마는 위대하지 않은가?

 

나야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왔다.

하지만 아내는 완전히 묶여있었다.

특히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일수록 더욱 그렇다.

당최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예한이가 정해진 룰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자폐를 앓고 있듯이

아내는 예한이의 삶에 완전이 묶여있는 것이다.

나의 의지? 나의 계획? 따위는 생각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함에도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 장학생 까지 하는 사람  아닌가?

남편으로서 부끄러워 진다.

아내가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까지 몰린것은 안타까운 일,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많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사실 수술이 끝날때 까지 의지 할수 밖에 없었다.

세례 받고 난후 이렇게 긴 시간을 기도라는 것을 해 본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사히 넘어갔다.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렇게 아이들 엄마로서의 아빠의 세번째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