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통 끝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듯
어제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이상한 몸살로 기어이 출근하지 못했다.
뼈마디 어디하나 아프지 않은곳이 없어 젓가락도 쥘수 없었다.
출근을 포기하고 하루 푹 쉬고 개운한것을 보니 최근 무리와 스트레스가
40대 중반의 몸에 시그널을 준것 같다.
덕분에 모자란 잠도 충분히 잤고 재충전도 된것 같다.
그리고 오늘 최근 발생된 일련의 사태로인해 신경을 곤두세웠던 사건을 마무리 하고 있다.
나의 임무인 성명서 작성으로 늦은 시간 재충전된 에너지를 다시 소진하고 있는게다.
어쩌면 산통끝에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듯 새로운 역사는 꼭 진통이 따른다.
늦은 시간 후배 간부가 무겁고 허탈한 심정을 전화로 토로한다.
이 시간 견디기 힘들다는 말에 가슴으로 흐느끼고있음이 전해온다.
당연하다.
결코 정의감과 책임감으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간부가 된 이상 네가 감내해야할 몫이니 받아들이라고 했다.
지금의 심적 고통이 오늘은 감당하기 어려워도
이것이 앞으로 느껴야 할 고통이 열 이라면
오늘로 인해 두세개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위로하자고 했다.
후배의 심정을 나는 잘 안다.
강하게 처신할수 밖에 없는 그가 흐느낄 벽이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아픔과 진통속에 사내인권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역사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고
이 시간 또 여러 사람들이 희생을 해야 했다.
결국은 더 나은 세상으로 진보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바람이 하나 있다면
이 모든 과정이 좋은 의미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