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우리 생활속에 미치는 창조적인 사고는 어디쯤일까?
모두들 바쁘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노동자의 생활은 바쁘다.
"도대체 정신 없다"고, 속된 말로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푸념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일은 주어졌기에 하는 일들이다.
정해진 스팩대로
다만 나의 직무가 그것이기에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방식외에는 없는것 처럼 산적한 일들은 복사된다.
나 또한 길들여진 자세이기도 하다.
이 속엔 미치게 바쁠지언정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애정이 가는 결과물일지라도
안타깝게 '창조'란 보기어렵다.
어쩌면 창조는 조직이 창조적 산물을 받아들일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설령 조금은 어색하고, 아마추어 냄새가 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평가 하고 미래의 산물로 키워줄 만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모두가 길들여진 대로 하는것이 편한것이다.
그래서 일은 복사되기 십상이다.
한가지가 더 있다면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다를수 있다는 생각과 다른 생각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
하지만 대 다수의 정서와 다르면 심지어 왕따가 될 수 있는 사회적 풍토와
조직적 정서가 있는한 창조적 사고란 키워지기 어렵다.
사실 '창조'가 결여된다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도전 정신이 아닐까 한다.
특히 진보와 사회변혁을 꿈꾸는 사람이나 조직은 도전 그 자체가 생명이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나 자신에 대한 도전
조직이 봉착한 한계에 대한 도전
때로 도전은 투쟁이라는 결의와 일치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있는 인자들이
어쩔때 보면 가장 보수적인 틀속에 억매일 때도 많다.
그럴때면 창조와 다양성이 인정되지 못하는 진보가 된다.
나의 주소는 어디쯤인가?
내가 몸담고 있는 모든 조직의 주소는 어디쯤인가?
발상의 전환과 스스로에게 질러대는 모진 비판조차도
웃으며 받아 안을 수 있는가?
모름직이 바람직한 조직은
조직원이 동일한 생각을 갖는 것을 멀리해야 한다.
그 대신 조직원이 창조적 사고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창조하려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가에 따라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했다"가 아니고 "어떻게 했느냐"다.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자신감이 녹아있아야 한다.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떻게 해온것이냐고
내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줄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