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글쓰기

초심의 거울

더더좋은날 2011. 4. 12. 22:05

 

역사는 소중하다.

과거는 망각의 대상이 아니고 되새겨야할 대상임을 깨닫는다.

초심을 바라볼수 있는 거울같은

간만에 내 개인블로그인 이곶에 들러 우연치 않게 2009년 12월 노동조합 선거를

전후한 시기 내가 남긴 글들을 보게되었다.

 

참으로 절박한 시기였다.

비장했었다.

도덕성, 인간의 본성까지 들먹여야 했던 비정한 세월을 보냈다.

참 많은 것을 깨달았던 시기였다.

모든것을 걸었던 때였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경험은 많지 않다.

모든것을 걸어서 이자리에 와 있건만

그 감사함을 잊고 산게다.

한편한편 글을 읽으며 주마등처럼 스치는 과거의 회상에 눈시울을 적신다.

지극히 상식적인 호소를 뿌리치며 오히려 협박을 일삼았던 어느 유력부장을 경험하며

비정한 사회와 무서운 조직의 어둠을 보았다. 

순식간에 변해버린 싸늘한 얼굴들

하루아침에 소신을 뒤집는 변절자 같은 사람들

협박에 시달려 양심의 갈지자를 걸으며 고통스러워 했던 사람들

배신과 오욕의 구정물 속에서 오로지 양심과 올바른 판단만을 기대어 왔다.

그 당시는 가슴에 칼을 갈 여유조차 없었다. 

살아 남아야 했기때문이다.

되돌아 보면 2009년 12월 우리는 선거를 치룬게 아니고 절박한 생존 투쟁을 한것이다.

그 장면들을 곱씹으며 한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죄를 지은 이들은 자신의 죄를 잃어버린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감사함을 잃어버린다.

여기 두가지 사항에 해당하는 존재들이 있다.

한쪽은 조합원의 은혜를 입은 집행부고

 

한쪽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 철학도 원칙도 없었던 노동조합의 권력의 추종자 들이다.

그들은 사용자를 선거판에 끌어 들이는 죽어도 해서는 않될 역사의 죄를 지었다.

모두 1년을 조금 지난 이 시기 망각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기적과 같은 승리를 얻으며 약속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집행부 인가? 반드시 노동조합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포용을 약속 했다."

차가운 단죄를 묻지 않아서 인가?

어느새 사리사욕으로 노동조합만의 잔치에 사용자를 끌어드렸던 사람들은

반성도 없이 또 다시 조합 활동을 꿈 꾸고 있다.

이만하면 포용력 있는 집행부 아닌가?

사용자도 포용하고, 노동조합의 이름에 먹칠하며 노동조합 존립 자체를 위협했던 인간들도 포용 했다.

오히려 그들은 전리품까지 챙겼다.

어떤이들은 승진을 챙기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활동 공간을 보장 받지 않았나?

그리고 그들은 포용을 보기 좋게 조롱하고 있다.

 

우리가 보장받은 것이라곤? 무엇인가?

여전히 우리는 전투를 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저당잡힌채 

일종의 담보다. 

 

적어도 나는 잊을수 없다.

원한을 잊을수 없는 것이 아니고

명동성당의 약속을 잊을수 없다.

노동조합을 지켜달고 기도했고

정의가 승리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반드시 제대로 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집행부 2년차 그 약속은 잘 지키고 있는가?

 

나름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했냐는 질문에 큰소리로 대답할수는 없어도

고개는 끄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하루도 편하게 보내지 못했던 집행부 1년차

이제 병까지 얻어 평생 먹어야 할 약이 한가지 더 늘어날 만큼

스스로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건방진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스스로 위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까?

 

아직 아무것도 끝난것은 없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았다.

지치거나, 후회되거나, 권력과 편안함의  유혹에 흔들릴때

지난 과거는 추억이 아니라 약이다.

감사해야 할 3년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가야하지 않겠나?

명동성당의 눈물이 부끄럽지 않도록

과거를 회상하는 거울속에서 초심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