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더 강해져야 겠다.
자기표현 능력이 부족한,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장애아동 부모의 애타고 분한 마음을 실감했다.
누가 그랬는지 정확히 알수 없지만
예한이의 양쪽 귀가 피멍이 들었다.
모든 동선이 가족과 함께 있거나 학교에 있을 때도 거의 교사와 함께있는 아이다.
학교 마져도 쌍둥이 누나인 예슬이와 같은 반이니 학교 생활의 절반 이상도
비록 어린 누나지만 함께 보내는 아이다.
남이 때려도 방어는 커녕 표현조차 어려운 불쌍한 아이에게
누가 이런 몹쓸 짓을 하는가 말이다.
적어도 고학년이 되면 학교 폭력 문제로 고민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고작 2학년, 아직은 아니라고 안심했었다.
문제는 어른이다.
예한이 유아시절 공동육아로 안심하고 유치원에 보냈지만
가슴에 상처만 남기고 공동육아를 포기한 기억이 떠 오른다.
그때도 보육 선생님의 폭력이 문제였었다.
고작 5살밖에 않된 어린아이에게 그 교사는 강제 급식이라는 몹쓸 짓을 했었다.
물론 교사는 해임되었지만 가족같은 마음으로 공동육아를 함께했던 부모들에게도
너무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증거는 없지만 이번에도 어른의 행동에서 받은 피해가 분명하다고 믿는다.
토일요 학교에 찾아가
정중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할 말을 했으며
그리고 예의를 갖춰지만, 엄중하게 경고 했다.
학교에서 발생된 일은 학교의 책임 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고 나니 또 걱정이다.
자기 표현 능력이 무척이나 부족한 아이인데
또 다시 피해를 당한들 이번처럼 표시나지 않으면 알수 없는 문제 아닌가?
아내는 상당히 근심스런 얼굴이다.
왜 걱정이 안되겠는가?
그러나
교사의 양심을 믿으려 한다.
대한민국의 노동계 조직중 제일 필요하고 존경하는 조직이 전교조인 만큼
나는 교사의 양식을 믿고 싶다.
교사도 사람인즉, 힘들때도, 스트레스 받을 수 있다.
사람인즉,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실수 할수도 있을게다.
적어도 딱한 장애아동의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약속 만큼은 지켜 줄꺼라고 믿는다.
그래 믿지 않고 어떻게 학교를 보내고
편히 잠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날 밤 조합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이 너무 천진하고 천사처럼 예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저렇게 천사같은 아이에게....
꽃으로도 때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어떻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내 아이라는 것을 떠나서
어찌되었건 그래서는 않되는 일이다.
앞으로 더한 일들이 많을 텐데
내가 지켜주어야 할 아이
아빠는 더 강해져야 하겠다.
혼자서가 안되면 여럿이 함께 더 강해져야 한다.
예한아, 예슬아 사랑한다.
너희들을 지켜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