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어트 모임의 폭식 스캔들(한겨레 21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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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 사찰로 촉발된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조직 의혹’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정점으로 한 특정 집단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점점 번지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각종 인사에 비선으로 개입했다는 이른바 ‘메리어트 모임’ 멤버로 박 차장, 유선기 이사장,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과 함께 정인철 비서관을 지목하고 있다.
KT는 ‘부회장사’, NHN 등은 ‘이사사’
정 비서관은 매달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국책은행장과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서울 시내 ㅍ호텔로 불러 저녁 모임을 열면서 인사 개입, 민원 해결 등의 창구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이들에게 정 비서관은 ‘유선기 이사장이 찾아가면 도와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참석한 기업들은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 수천만~1억원대의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그 한국콘텐츠산업협회의 상임이사 겸 사무처장이 정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표이사직을 맡았던 ㅋ사의 김아무개 이사인 것이다. 유선기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서 무보수 부회장직을 맡아 몇몇 기업에서 수천만원가량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정 비서관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만난 적이 없고, 모임에서 나를 도와주라고 했는지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협회가 2008년 12월에 설립됐고, 그때부터 여권 인사인 김 이사, 이아무개 변호사 등이 활동한 것으로 미뤄볼 때 단순히 “한국 콘텐츠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법인 등기부등본상 설립 목적)하려는 단체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 비서관과 가까운 인사들이 주요 임원인 이 협회를 도우려고 정 비서관이 기업에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23일 열린 협회의 ‘글로벌 콘텐츠 포럼’엔 KT, 포스코,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정 비서관이 정기 저녁모임에 참석시킨 기업·은행들이 후원했다. 또 SK텔레콤, 한전, 국민은행 같은 대기업도 포럼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협회 홈페이지(www.kocia.or.kr)엔 KT를 이 협회 ‘부회장사’로, NHN·CJ엔터테인먼트·롯데시네마를 ‘이사사’로 소개하고 있다. 정 비서관이 기업에 후원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일 이후로는 접속이 차단된 상태다. <한겨레21>은 이와 관련해 정 비서관과 한국콘텐츠산업협회 쪽의 답변을 들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 비서관과 유 이사장은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주장한 ‘메리어트 모임’의 멤버이기도 하다. 전 의원은 이들과 박영준 차장,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박 차장이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 서울 반포 JW 메리어트 호텔 비즈니스센터에 수시로 모여 정부와 공기업, 산하기관 등의 인사를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박 차장이 사무실을 (최근에도 총리실) 근처에 두고 거기서 인사 담당자를 만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인사 농단 의혹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 이후로 중단됐다는 ‘메리어트 모임’이 사실상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정두언 의원 “박영준, 총리실 근처 사무실 차려” 정 의원은 7월6일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총리실 직원들은 박 차장이 총리실에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일정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며 박 차장이 총리실 외부에 별도의 개인 사무실을 내놓고 여전히 인사에 개입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차장이 밖에 있을 땐(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그만둔 뒤엔) 메리어트 호텔과 서울 여의도 진미파라곤 빌딩의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사무실을 이용했고, 그 후엔 사무실을 (총리실) 근처에 또 두고 있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인사를 농단한다는 게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박 차장은 지금도 여전히 비선 조직을 통해 청와대·정부·공기업 등의 인사를 좌우하고 있으며 국정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물론 박 차장과 관련 인사들은 메리어트 모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최근의 별도 사무실 의혹을 놓고도 박 차장과 ‘의형제’라는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 등은 “금시초문”이라며 극구 부인한다. 사실 박 차장 등 ‘메리어트 모임’이 곳곳에 자기 사람을 내려보냈다는 주장이나 정황은 많지만, 아직 그 대가로 이들이 뭘 챙겼느냐는 정확히 드러난 바가 없다. 하지만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이권인 것은 분명하다. 유선기 이사장은 2008년 국민은행과 1년간 월 자문료 1천만원 규모의 자문계약을 맺었다. 조재목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는 2009년 3월 국민은행의 모회사 K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사외이사 연봉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천만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국민은행이 지난 5월 전국은행연합회에 공시한 기부금 내역을 보면, 국민은행은 선진국민정책연구원에 2009년에만 4천만원을 기부했다. 더구나 메리어트 모임 참석자로 지목된 인사들이 정부와 산하기관은 물론 민간기업 인사에까지 관여했다는 잇따른 증언은 이들의 ‘결백’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 정부 들어 한 민간기업 임원으로 발탁된 여권의 한 인사는 박 차장이 선진국민연대와 대구·경북(TK) 인맥을 통해 인사 라인을 다 장악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TK 출신들은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형님, 동생 한다. 거미줄처럼 얽혀서 전화하면 모든 게 되는데, 그 정점에 ‘박영준’이 있다고 보면 된다. 직급이 낮아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사 분야에 ‘박영준 라인’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강정원이 KB금융지주 회장직 버텼던 이유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앞두고 불거진 내분에서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강정원 KB국민은행장은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사임한 뒤 회장으로 내정됐다. 이후 금감원이 ???를 이유로 조사를 펼치는 등 고강도 압박을 했지만 계속 버티다 그해 마지막 날인 12월31일에 사의를 표명했다. 한 금융권 인사는 “당시 금감원 조사에서 KB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투자 실패, 강정원 회장 내정자의 개인 비위 혐의 등 10가지 정도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으로 안다”며 “이같은 조사를 하는데도 사퇴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던 것은 강 회장 내정자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버틸 수 있던 배경이 바로 ‘메리어트 모임’이었다는 의혹이 나온다. 당시 경쟁 후보로 나선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은 7월9일치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정 비서관에게 회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장은 나중에 이 발언을 취소했고 정 비서관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또한 유선기 이사장과 선진국민정책연구원 이사인 조재목 KB금융지주 사외이사도 이 사장에게 후보 사퇴 압박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는 “강 내정자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있어도 된다’는 박 차장의 언질 때문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유선기 이사장과 조재목 사외이사도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정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돌연 사퇴했을 때도 박 차장과 가까운 청와대 인사 담당 행정관 3명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들은 포항 또는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박 차장이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함께 일했다. 우리은행의 김아무개 부행장도 박영준 차장과의 인연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 부행장은 경북 칠곡 출신이자, 박 차장과 고려대 법대 동창이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노조 관계자는 “김 부행장이 통상 거치는 단장을 거치지 않고, 본부장에서 바로 부행장으로 승진했다”며 “현 정부와의 관련 얘기가 나돌기는 했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이미 지난해에도 포스코 회장 인사와 관련해 의혹을 샀다(760호 특집 ‘정권 핵심 포스코 접수 원격조종’ 참조).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박 차장이) 야인 시절인 2008년 11월부터 2009년 1월 사이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과 이구택 회장, 박태준 명예회장을 만나 차기 회장에 대해 논의했다”며 “박 차장은 2009년 1월 이구택 당시 회장과의 조찬에서 ‘새 회장을 정준양으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영호 비서관은 노동부 산하기관 인사 ‘주물럭’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노동부 산하기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국노총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친 이 비서관이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산하기관장과 임원으로 ‘꽂아넣었다’는 얘기는 한국노총 관계자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08년 5월 산하기관장 8명이 일괄 사표를 제출한 뒤 7월부터 기관장·임원 인사가 차례로 진행됐다. 그런데 관행적으로 노동부 출신이 가던 자리에 ‘의외’의 인물이 선임됐다는 것이다.
이 비서관과 한국노총에서 함께 일했던 최대열 전 한국노총 정치기획단 부단장은 인수위 정책연구위원과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뒤 지난해 4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홍보이사가 됐다. 산업인력공단의 경우 이사장에 유재석 전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 상임감사에 송승호 전 <월간조선> 기자, 기획운영이사에 이윤호 전 인수위 실무위원이 임명됐다. ???무슨 의미?? 정인수 전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 소장은 한국고용정보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인물?? 이렇게 비노동부 인사들이 산하기관에 자리를 차지하면서 노동부 안에선 불만이 대단히 컸다고 한다. 한국노총 출신의 한 인사는 “노동부 산하기관 임원으로 가려면 이영호 비서관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정설이었다. 이 비서관에게 ‘그러지 말라’고 여러 차례 충고했지만 오히려 관계만 나빠졌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의 측근은 “그러면 노동부 산하기관에는 노동부에서 퇴직한 사람만 가야 한다는 얘기냐”고 반박하면서도, 이 비서관이 산하기관 인사를 주도했다는 의혹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정말 박 차장과 ‘메리어트 모임’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박 차장과 가까운 한나라당 핵심 인사는 “박 차장이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 작업을 할 때 가장 큰 인력 풀이 선진국민연대였다. 또 인수위와 초기 정부 인사를 주도하고 직접 청와대에서 국정 운영도 몇 달 해봤기 때문에 누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시스템을 파악했을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많은 정보와 사람이 박 차장에게 모여들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박 차장도 정치를 오래 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고 워낙 일정이 바쁘기 때문에 별도로 무슨 조직을 만들어 권력을 틀어쥐고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조직적인 국정 농단 의혹엔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른바 ‘영포 라인’의 공직자 모임, 선진국민연대라는 대선 사조직, 이 두 개에 중첩되는 인물은 박영준 차장”(백원우 의원)이라거나, “영포회와 선진국민연대가 결합한 모임이 공기업 인사까지 결정했다는 것은 사조직의 국정 농단이자 월권행위, 권력형 국기 문란 행위”라며 박 차장을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백원우 의원은 “박 차장의 힘은 ‘형님 권력’에 기반한다고 분석하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이상득 의원을 배후로 지목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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