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글쓰기

남겨진 유산 '소통' (사내 사랑방 게시글)

더더좋은날 2009. 6. 4. 03:41

 

  뜨겁게 내려쬐는 강렬한 햇볕은 메마른 시청 앞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아스팔트에서 내뿜는 뜨거운 열기와 따가운 햇살로 인해 빨갛게 달아오른 두 뺨을 타고 어느새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느 누구도 닦아내려 하는 이 없다. 그저 입술을 꽉 깨물며 슬픔과 분노의 마음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치열한 삶을 살다간 보통사람의 대통령 ‘바보 노무현’을 보내야 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다.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무관심으로 지키지 못했으니 당신이 지키고자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야하며 당신이 그토록 추구했던 사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열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인의 평생 동안 신념이 단 하나뿐인 증거가 아닌 상식으로 통용되는 세상을 우리아이들에게 남겨 주어야 하지 않겠나?  이 모든 것을 자신을 내던져 일깨워 주었기에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전직 대통령 서거이후 전 국민적 추모의 물결이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유서의 이 한마디가 ‘사회통합’을 내포한다는 각계의 해석에 대해서 일정부분 동의 한다. ‘사회통합’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투신했던 그의 정치 역경을 본다면 고인이 추구했던 일관된 가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처럼 역사적 분열과, 정치 사회적 분열, 특히 빈부 격차로 표출되는 경제적 분열 등 우리나라 곳곳에 점철된 분열을 극복해야하는 것은 지상의 과제이기에 통합의 가치는 변화된 시대의 유효한 아젠다 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일은 과정과 순서가 있는 법, 거시적 이상으로서의 통합의 가치도 소중하지만 지금은 소위 양심세력의 대통합, 지향점이 같은 모든 민주세력의 대통합이 진행되어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비주류라는 이유로 기득권에 의해 멸시 당하고 끝내 죽음으로 까지 내 몰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줌 밖에 않되는 권력에 취해 가진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안하고 서민들에게만 고통을 전가하는 양심 없는 행위는 죄를 물어야 한다.  나아가 서민의 목소리는 들으려고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등 모든 소통의 틀을 스스로 차단하는 이 오만한 정권의 반역사적인 전횡을 틀어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노동조합의 목적이 무엇이던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덕성과 온전한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끊임없이 조직하고 불의와 맞서 투쟁하는 것 아니던가?  따라서 사회개혁은 노동조합이 추구해야 할 주요한 역할중 하나인 것이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한다.  노동운동도 위기에 직면해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발가벗으라고 재촉하고 있다. 우리가 제도권의 틀 속에서 권력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우리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고 지키려했던 세월은 노동조합의 위기를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이기도 하다.  자본이 만들어 놓은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열과 차별이 우리들 관념 속을 관통하고 있는 한 위기는 지속된다.  언제부터인가 경쟁과 효율이라는 가치속에 인간성은 거추장스러운 과거의 낡은 유산이 되어버린 이 척박한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위기와 탄압은 멈춰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노동조합도 대통합의 가치를 주도하고 사회개혁세력의 통합의 큰 줄기에 합류해야 한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 지향점에 동의하는 모든 조직이 연대와 통합의 가치아래 하나가 되어야 작금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합에는 대전제가 분명히 따른다.

바로 모든 『기득권의 포기』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인정』이다. 『쌍방소통의 배려』이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그것이 통합의 전제가 되는 것이고 더 큰 힘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통합은 흩어지면 보잘 것 없는 힘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힘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탄생이다.

이제 ‘바보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대의 앞에 두려워 말고 원칙과 신념을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할 때이다.  적어도 노동조합을 이끌어 갈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통합의 가치아래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더 큰 힘으로 하나 되어 우리 후배들에게 물려줄 ‘신명나는 조직’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반격을 꿈꾸어보아야 하지 않겠나?

 

  슬픔의 그날!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고인의 즐겨 불렀던 노래를 다함께 부르며 보내드리자”던 사회자의 부탁이 있었지만 도저히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마음을 다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외쳐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미안하다”는 마음과 함께 “감사하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무엇에 대한 감사일까?  노랫말처럼 살아남은 자의 몫이며,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해 주었고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할지 자신을 던져 깨우쳐 주었기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버려야 하는 이유와 여전히 사람이 살만한 세상은 멀기에, 그래서 흩어진 사람들 모아 내고 다시 어깨를 걸어야 하는 이유를 깨우쳐 주었기에 감사했던 것이다.  그렇게 눈물 흘리며 함께 불렀던 노래 ‘상록수’는 내게 푸르른 새로운 다짐이 되었다.

2009년 5월 29일 이날은 평생 잊지 못할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아니, “잊어서는 안될 날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본다.